한낮의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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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

fractured

아 씨발… 진짜 망했는데… 중앙 아시아에서 사고를 당해 오른팔이 아작이난 후 8시간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 5시간 동안 수술을 하고 마약성 진통제에 쩔어 정신을 차렸을 때, 내 인생은 정말 망했다고 생각했다. 신경이 찢겨 오른손은 감각은 커녕 움직이질 않았고 조금만 움직여도 찾아오는 신경통 덕에 화장실도 못 갔다. 진통제 탓인지 하루종일 구역질을 하며 지쳐 잠들다 밥 시간이 되면 살겠다고 왼손으로 질질 흘리며 죽을 먹는 자신을 보며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다 약발이 끝나면 천장을 보며 하나님, 부처님, 알라신이시여 제발 제발 제발 덜 아프게 해주세요 라며 빌었다. 회진을 온 의사는 오른손이 안 돌아올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 말하고 떠났다.

그 당시 난 정말 다치지 말았어야 했다. 미국으로 Relocation 일정이 잡혀 있었고, 다음 주까지 마무리할 장기 프로젝트가 있었으며, 3년 동안 목 빠지게 기다린 검정치마 콘서트가 있었고, 연초에 목표 했던 PR이 거의 다다라 있었다. 이제 키보드도 못 치고 운동도 못한다니… 진짜 너무 짜증이 났다. 지금까지 고생한 게 한순간 부상으로 다 날아가 버린다니. 몇 년 동안 준비했던 것이 결실을 맺는 20대 마지막을 침대에 누워서 보내야 한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허무했다. 이제 좀 행복해지려고 하는 데 내 인생은 어쩌면 매번 이러지? 이런 상황에서도 이겨낼 수 있다 생각해야 강한 사람인 건가? 나는 이제 키보드 치는 일은 못 하는건가? 진짜 이렇게 끝인 건가? 생각했다. 그날 밤,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상상을 했다. 이제 내가 더 이상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생각했다.

병원에서 퇴원한 후, 비행기 모드를 켜고 가족을 포함한 누구와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수면제를 먹고 끝없이 잠을 자고 일어나면 약 기운 탓인지 먹고 토하기를 반복하다 찾아오는 신경통에 바닥에 앉아 껄껄 울었다. 왜 혼자 이 쌩고생을 해야 하는지 욕을 하다 너무 외로워 나는 왜 주위 사람에게 옆에 있어 달라고 말하지 못하나 자책했다. 다치기 전까지 내 삶에 유일한 자부심은 매 순간 고군분투 하면서도 오롯이 내 힘으로 내 삶을 이끌어 가는 데 있었다. 대학을 다닐땐 오전에 수업을 몰아 듣고 오후에는 돈을 벌고 장학금을 타려 새벽 늦게까지 공부를 하다 고시원에 들어오는 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천장을 바라보면서 왜 이런 고생을 하며 살아야하나 생각하다가도 지금 안자면 내일을 살아낼 수 없다는 사실에 멜라토닌을 입에 털어 넣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몇 년을 버티다 보니 지금은 혼자 힘으로 몸을 굴려 밥을 먹는 것이 하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나는 이제 오늘 일하지 않아도 내일 끼니를 걱정하지 않는 삶이 무척이나 떳떳했다. 그러나 이 사고로 깨달은 건 이토록 떳떳했던 내 자부심이 나를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는 멍청이로 만들었다는 사실이었다.

이렇게 누구도 만나지 않고 골방 폐인처럼 산 지 두 달쯤 지났을까, 끝도 없이 내려가는 기분에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내가 이런 곳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악몽같은 어둡고 긴 밤들을 지새우며 정말이지 이렇게 살다간 당장 창문으로 뛰어내릴 것 같았다. 상담에 들어가기 전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나무를 그리고 집을 그리고, 그려진 그림에서 뭐가 보이는지 설명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후 30p로 된 나에 대한 리포트를 받았다. 그 리포트 안에는 여러 가지 말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이 남는 말을 꼽자면 나는 부정적인 정서나 경험을 정서 그 자체가 아닌 사고 수준에서 다루어 감소시키고 중화시키는 주지화를 주된 방어전략으로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좀 더 쉽게 말하자면 불행한 일이 벌어졌을 때 그에 대한 상심, 실망, 불안을 들여다 보는 것이 아닌 인과관계를 따져 변수를 하나씩 제거해보며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가장 그럴싸한 대상을 추적하기 시작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방어기제는 일반적인 상황에서 정서적 스트레스를 다루는 효과적인 대처방식이지만 강렬한 정서 경험일수록 주지화 전략으로 충분히 감당되거나 처리되지 않아 감정 통제의 어려움을 느끼고 고통을 경험하며 때로는 실제적 영향을 부인하기 위해 개념적 사고를 왜곡된 형태로 받아드린다고 했다.

“상담을 열심히 받으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리포트를 받고 나서 일주일 후 시작된 세션에서 이렇게 물었다. 상담 선생님은 나은 사람의 정의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했다. 그 후 이어진 세션에서 익숙한 주지화 전략에서 벗어나 내 감정을 올곧이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불행했던 사건과 찌질한 실수와 관계에서 오는 후회들을 말했고 피드백을 들었다. 기억하기도 싫은 과거를 내 입으로 정리해서 말하고 그 날의 감정을 그대로 다시 느껴야 한다니… 매 세션을 가는 날 아침엔 손톱을 물어뜯곤했다. 세션마다 내가 이렇게나 별로인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한탄하는 동시에 그 사건들에서 내 감정이 어땠는지를 바라봤다. 몇 주간의 상담을 통해 나는 불행한 일들은 대개 내가 후회하는 것을 소거 하더라도 벌어졌을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일들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닥쳐오지만, 양자역학에서 흔히 말하는 것처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거다. 그래서 그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원인을 나열해가며 시간과 감정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수습하고 인정하고 감당하는 연습을 해 다음에 다른 불행과 마주 했을 때 조금은 더 수월하게 넘기는 것에 집중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번의 상담 이후 나는 이럴 때일수록 정신을 차려야겠다고 다짐했다. 힘들 때일수록 포기하지 않고 움츠리면 안 된다 생각했다. 다시 할 수 있다, 다시 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면 된다라며 나를 다독였다. 알고 지내던 트레이너분에게 연락을 해 매일매일 재활운동을 잡았고, 가끔 보던 친구들에게 연락해 매주 주말 약속을 잡았다. 너무나 우울할 땐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 징징거렸다. 헬스장에 가서 들 수 있는 대로 덤벨을 들기 시작했고, 눈이 오든 비가 오든 매일 아침 청계천을 뛰었다. 매일 같은 시간 잠을 자고 밥을 먹었다. 그때 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건 부상을 잘 회복하고 이 시간을 친구들과 시덥잖은 농담을 하며 보내야 한다 생각했다. 그때 나는 다시 뼈와 신경이 회복되어 정상적인 삶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것밖에 없었다. 단지 오늘이 그 날이 아닐 뿐, 하나하나 회복하다 보면 그날은 분명히 올 것이라 믿었다.

사고 후 6개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나는 사고 이전보다 훨씬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이제 뼈는 거의 붙었고 의사도 어렵다던 신경은 조금씩 돌아와 이렇게 긴 글을 쓸 만큼 키보드도 칠 수 있게 됐다. 처음엔 2kg 덤벨도 못 들었던 내 팔은 벤치프레스 80kg를 들어도 거뜬하다. 아침에 몸이 아무리 피곤해도 5km는 쉬지 않고 달릴 수 있고 정시에 잠에 들며 가까이하던 술과 담배도 멀리하고 있다.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면 상담가 선생님의 섬세한 피드백이나 트레이너님의 긍정적인 마음가짐, 친구들과 웃으며 보냈던 시간이 없었다면 방안에 갇혀 피폐한 채 혼자 끙끙 앓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직 손과 팔이 정상으로 돌아오진 않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 긍정적인 성격으로 변하고 있다. 커다란 불행에는 의외로 사소한 결심과 웃음이 소중하다. 그리고 이제는 혼자서 이런 불행을 이겨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이 간단한 사실을 무려 뼈가 부러지고야 알았다. 한동안 만나는 사람 모두에게 부정적으로 이야기해서 미안했다. 정말 너무 너무 힘들었다. 이 글을 보면 알만한 당신들 덕에 어려운 시간에서도 살아남았다. 이젠 당신들에게 제때에 고마움을 전달할 일만 남았다. 신이 있다면 이들에게 축복을 내려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