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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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8일

저는 어지러운 삶의 순간 속에서도 친절함을 머금고 예의를 지키려 노력합니다. 누군가는 가식이나 내숭, 착한 척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노보단 사랑이 현실을 바꿀 수 있다는 일종의 믿음 때문일까요. 제 스스로 불친절하고 못나게 행동했을때, 그 결과는 항상 후회와 자책으로 돌아 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부정적으로는 ‘인과응보’, 긍정적으로는 ‘사랑은 사랑으로’라는 의미를 진심으로 믿고, 마음 속에 품고 살아요.

이런 생각 때문에 최선을 다해 기분과 생각이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기분이 무지 땅을 파고 있을 때는 겉으로 잘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렇지만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감정이 태도가 되는 날도 물론 무지 많았습니다. 저는 그럴 때 주로 그냥 멈춰버렸어요.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서 였는데, 아무리 티를 안내려고 해도 안낼 수가 없어 잠시 뇌에 전원 버튼을 끄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나이가 들어 기분이 안좋을 때에도 강제로 뭔가 해야 하는 일들이 생겨났다는거에요.

저는 기분이 땅을 파고 있을때 잠시 멈춰가며 다시 일어서 왔는데, 강제적으로 뭔가를 해야될 땐 멘탈이 붕괴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게 얼굴에 나타는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최대한 노력은 하고 있지만 함께 있는 장소의 제 얼굴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표정, 한숨 소리, 기대감, 실망감, 모든 것에서 머릿 속이 복잡해지고 공포감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런 문제를 방치한 채로 그저 나이가 들면 해결되겠지, 경험치가 생기면 하나씩 쉬워지겠지 하는 시쳇말로 시간 보내고 있다가, 더는 안되겠다 싶어 제가 이런 문제를 겪는 이유를 제 방식대로 해결 해보기로 했고, 그러다 최근에 꽤 멋진 해결책을 찾게 되었어요.

심리학자인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캐슬린 보스의 실험을 살펴보면 의지력이 고갈 되었을때
사람들은 모든 일에 대해 더 격한 반응을 나타내는 것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슬픈 영화를 보면 더 슬프게 반응하고 특정 자극에 대해
더 고통스러운 반응을 보이거나 음식을 먹거나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할 기회가 생기면 그 욕구가 훨씬 더 강력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신체적 행위로든 정신적 행위로든 에너지와 노력을 사용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모든 행동들에 필요한 에너지는 각기 다르지 않고
의지력이라는 하나의 한정된 에너지를 사용한다. 
문제는 의지력이나 정신력같은 개념이 독립적인 개념이 아니라
신체적 능력과 강한 연관 관계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 

사람들은 피로해지면 무기력해지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하게 되고 해야할 일을 미루게 된다. 
사람은 피로해지면 기억력이나 집중력에 문제가 생기고
화를 자주 내거나 이기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왜냐하면 신경생리학 적으로 피로가 쌓이게 되면 뇌에 전달물질이 바닥이 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뇌는 모든 상황에서 판단력이 떨어지고 수동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결국에 의지력이나 정신력과 같은 개념은
체력이라는 요소가 반영된다는 것이다.

언젠가 현대 과학에서는 사람도 자유의지 따위는 없고 그저 화학 물질로 컨트롤 되는 컴퓨터와 다를 것이 없다고 보고 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에 따라 배려심이나 이타심 마저도 사실 계량화가 가능하다면, 제가 이런 감정들에 젖어들게 된건 혹시나 체력이 점점 약해져서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생각이 들었을 때부터 저는 새벽에 일어나면 헬스장에 나가요. 몇달 동안 내가 정한 스케쥴에 따라 정해진 무게를 일정한 횟수와 시간내에 들고 내리고 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하루 하루 체력이 늘어남을 느껴요.

이런 사소한 변화가 제게 가져다 준 변화는 굉장이 컸어요. 단순히 체력만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매 아침마다 제가 제 자신의 삶을 컨트롤 한다는 느낌을 받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제 삶의 주도권을 뺏기는 일하는 시간엔 에전 보다 스트레스를 덜 받고, 타인에 대한 이해, 배려심 같은 것들이 늘어남을 몸소 느끼고 있어요. 이 어찌 보면 하루의 1/12 밖에 안되는 짧은 시간이 가져다 주는 변화가 이토록 크다니, 다시 한번 인간은 나약하고, 내 감정도 한낱 화학 작용에 불과하구나 느낀 순간이었어요. 우스갯말로 요즘 저는 친구들에게 ‘난 슬플때 스쿼트를 해’라며 농을 던지곤 해요. 요즘 저는 왠만한 일에는 슬퍼하지 않고, 매일 허허 웃으며 지내요. 이런 작은 변화가 제 20대 후반을 한뼘 더 행복하게 합니다.

“거창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꼭 도구가 거창할 필요는 없다.” 라는 문장을 곱씹는 요즘입니다. 언제쯤 저는 이를 마음 깊히 받아드릴 수 있을까요?

아직도 배울 것이 넘치는걸 보면 아직 저는 세상에 호기심을 더욱 더 가져야겠다.. 라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