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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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3일

lalaland

최근에 친한 친구가 라라랜드를 봤던 날 밤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졌었다. 왜냐하면 내게 라라랜드는 “만약에 만약에”를 말하며 주인공들이 가장 행복했을 것 같은 순간만을 모아둔 판타지여서, 새로운 만남을 생각하기보단 오히려 관계가 가져오는 무서움을 먼저 떠올렸기 때문이다. 좋은 것들만이 모여있는 것을 보면 되레 무서워지는 내가 이상한 걸까도 생각해봤지만, 아무래도 현실은 현실이다. 이 영화에서는 가난한 예술가와 배우 지망생의 사랑에 재정 문제도 드러나지 않고, 등장인물들은 상황에 맞지 않게 행동하고, 시공간은 수시로 허물어져, 모든 선택의 순간 가장 최상의 결과만을 보여준다. 영화에서 보여지는 행복한 만큼의 절망이 현실에서는 존재한다.

만약에, 또 만약에, 괴로웠던 날에는 항상 “만약에”를 쌓아갔었다. 만약에 그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거기를 안갔더라면, 만약에 완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만약에 내가 돈이 조금 더 많았더라면, 만약에 내가 조금 더 강한 사람이었더라면, 그러나 인생은 같은 실수의 반복이고, 부끄러운 일의 반복이다. 모든 이별에는 특별한 단초가 있었다 생각하고 그것을 되돌리고 싶어 힘껏 자책을 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대부분의 경우 별 이유없이 헤어졌었다. “만약에”를 반복하더라도 달라지는건 아무것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루어 질 리 없고, 잘될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만약에”라는 말을 쉽사리 놓지 못했었다. 이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상상을 담은 라라랜드는 날 무너뜨렸었다. 현실의 잔인무도함을 이기기 위해 만약에, 라고 만번쯤 상상해보았기 때문이다.

극장에서 라라랜드를 본지 1년이 지난 지금 다시 라라랜드를 봤다. 라이언 고슬링은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의 재즈바에 붙어있는 엠마 스톤의 포스터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듯 지나가고, 한숨을 푹 쉬며 하나, 둘, 셋, 넷. 숫자를 세고 다시 건반을 친다. 그 친구는 이 장면을 보며 다시 사랑을 시작할 힘을 얻었을까? 도무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