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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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8월 1일

haewon

#1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은 혼자가 된 사람의 영화다. 영화과 학생 해원은 캐나다로 떠나는 엄마와 헤어진 날, 오랫동안 만나지 않았던 유부남 교수 성준을 다시 불러낸다. 둘은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관계를 숨기고, 끝내자고 말하면서도 번번이 같은 자리로 돌아온다. 해원은 혼자라는 사실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의 딸, 연인, 제자, 특별한 여자라는 이름에 기대보지만 그 모든 이름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한다. 주변 사람들은 해원을 예쁘고 특별하고 외국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쉽게 설명하지만, 정작 해원이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영화는 해원의 모순을 미성숙이나 성장의 이야기로 정리하지 않는다. 그저 혼자가 되지 않으려고 사람을 찾아갔다가, 그 관계 안에서 다시 혼자가 되는 해원을 오래 바라본다. 그런데도 해원은 다음 날이면 다시 일기를 쓰고, 걷고, 꿈꾼다. 이 영화에서 사람의 마음은 앞뒤가 맞지 않아 우습고, 그 모순마저 진짜라서 쓸쓸하다.

해원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남의 딸이 된다. 그것도 제인 버킨의 딸이다. 엄마를 기다리다 잠든 해원은 꿈속에서 제인 버킨을 만나고, 제인 버킨은 처음 본 해원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한다.

“당신은 정말 제 딸하고 많이 닮았어요. 특히 눈이 닮았어요.”

해원에게는 누군가의 딸이 되는 데 혈연보다 눈매 하나가 더 빠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배우의 딸과 닮았다는 말에 어린아이처럼 좋아하고, 그 딸처럼 될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다고 말한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의 딸이 되는 일이 저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싶다.

잠에서 깨면 진짜 엄마가 있다. 그 엄마는 다음 날 캐나다로 떠난다. 해원은 엄마가 다녔던 학교와 살았던 동네를 함께 걷는다. 엄마에게 캐나다는 새 삶의 시작이지만, 해원에게는 또 한 번의 이별이다. 헤어질 때는 아이처럼 운다. 제목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인데 영화는 시작부터 해원이 누구의 딸인지 부지런히 보여준다. 이상하지만, 꽤나 정직한 제목이다.

관계는 사람에게 이름을 주지만 사용설명서까지 주지는 않는다. 누구의 딸인지 알아도 해원이 왜 성준에게 전화를 거는지는 알 수 없고, 누구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아도 왜 그에게서 도망치고 싶은지는 알 수 없다. 해원은 분명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여자다. 다만 그 말들은 하나같이 틀리지 않으면서, 하나같이 별 쓸모가 없다.

#2 해원을 안다는 사람들

해원은 가는 곳마다 남이 지어준 해원이 된다. 엄마는 미스코리아에 나가보라고 하고, 성준은 누구보다 특별하고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친구들은 부잣집 딸이라는 소문과 유부남 교수를 만난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미국에서 온 교수는 해원이 한국보다 외국에서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한다.

해원은 자기를 좋게 말해주는 사람에게도 순순히 동의하지 않는다. 성준이 해원을 착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자 해원은 짧게 대답한다. “나 악마에요.”

가장 그럴듯한 해원은 해원을 거의 모르는 사람의 입에서 완성된다. 미국 교수는 잠깐 대화를 나누고도 해원의 겉과 속, 고통과 용기, 앞으로 살아야 할 나라까지 한꺼번에 알아본다.

“자신은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야만 하니까 계속 사람들과 부닥치는 것 같아요.”

미국 교수의 말은 그럴듯해서 오히려 수상하다. 그는 해원을 오래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고 먼저 말한 뒤, 정말로 해원의 모든 것을 아는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더구나 이 장면은 현실도 아니고 해원의 꿈이다. 꿈속의 남자조차 해원을 가만두지 않고 끝내 해원에 관한 해설을 완성한다.

해원이 없는 자리에서는 해원이 더욱 또렷한 사람이 된다. 학생들은 해원의 집안과 외모와 연애를 이야기하고, 당사자가 없는 덕분인지 사정은 점점 구체적이 된다. 사람 하나를 두고 여럿이 말을 보태면 그 사람이 선명해질 것 같지만 대개는 말한 사람들만 선명해진다.

아무도 자신이 지어준 해원이 맞는지 해원에게 묻지 않는다. 사람들은 해원을 예쁘고, 귀족적이고, 용감하고, 특별하고, 한국과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모두 해원을 보고 있지만 각자가 만든 해원만 보고 있다. 그래서 해원에게 붙은 이름이 많아질수록 정작 해원은 흐려진다.

#3 해원과 성준

성준은 해원을 사랑한다. 이 말은 아마 거짓말이 아니다. 그는 해원을 만나면 기뻐하고, 헤어져야 하면 괴로워하며, 해원이 다른 남자를 만났다는 사실에 울고 화를 낸다. 문제는 그 사랑이 불륜이라는 데 있지 않다.

성준의 사랑에는 늘 성준 자신이 너무 많이 등장한다. 그는 해원이 왜 힘든지 묻기보다 자신이 해원 때문에 얼마나 괴로운지를 말하고, 해원에게 미안해하기보다 다른 남자를 만난 해원에게 상처받는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마다 자기 사랑의 관객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인다.

성준의 눈물은 자신이 져야 할 책임보다 크다. 아내와 아이가 있는 삶을 그대로 두기로 한 사람은 성준이지만, 그 결정 때문에 생긴 슬픔은 해원도 함께 견뎌야 한다. 그는 함께 도망가자고 말하면서 실제로 도망가지는 않는다. 마음은 벌써 세상을 버렸는데 몸은 꼬박꼬박 집으로 돌아간다.

성준은 해원을 사랑하는 동시에 해원을 사랑하는 자기 자신도 사랑한다. 감정이 크고 절절할수록 자신이 얼마나 특별한 사랑을 하는 사람인지도 커진다. 그의 사랑이 해원을 편안하게 만들기보다 자기 사랑을 알아달라는 요구가 되는 이유다.

해원도 성준 앞에서 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먼저 전화를 걸었다가 끝내자고 하고,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하다가도 학생들 앞에서 관계를 밝히라고 몰아붙인다. 성준에게 돌아가는 해원과 그에게서 달아나려는 해원 가운데 어느 하나만 진짜라고 할 수는 없다. 사람 마음은 투표로 대표 한 명을 뽑아 보내는 곳이 아니다.

사랑이 진실하다는 사실과 그 관계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은 동시에 성립한다. 진심이라고 해서 좋은 행동이 되는 것은 아니며, 나쁜 관계라고 해서 그 안의 모든 마음이 가짜가 되는 것도 아니다. 홍상수 영화의 사람들은 감정이 없어서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감정만큼은 너무나 진실하다고 믿어서 상처 입힌다.

곤란하게도 이 대목은 영화 밖, 우리 삶에서도 별로 낯설지 않다.

#4 어제의 일기

“2012년 3월 21일, 어제 아침 11시에 5년 만에 엄마를 만났다. 너무 일찍 나가 한참을 기다리다 식당 방에서 잠이 들었다.”

해원은 늘 약속보다 먼저 도착한다. 엄마를 만나기로 한 식당에도 너무 일찍 도착해 한참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든다. 영화의 첫 번째 일기는 그렇게 시작한다.

해원의 일기에는 오늘이 없다. 영화에 나오는 세 편의 일기는 모두 ‘어제’의 일을 적는다. 첫 번째에는 엄마를 만난 일을, 두 번째에는 성준과 남한산성에 간 일을, 세 번째에는 오랜만에 학교에 간 일을 쓴다. 해원에게 하루는 살아내는 동안보다 지나간 뒤에야 문장이 된다.

어제는 오늘보다 조금 다루기 쉬운 시간이다. 벌어진 일을 고를 수 있고, 순서를 바꿀 수 있고, 그때는 몰랐던 뜻도 슬쩍 붙일 수 있다. 일기는 하루를 정직하게 보관하는 일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모양으로 다시 만드는 일에 가깝다. 기억은 늘 성실하기보다 친절하다.

꿈은 일기와 반대 방향으로 같은 일을 한다. 일기가 지나간 일을 다시 쓴다면 꿈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먼저 살아본다. 엄마가 떠나기 전에는 제인 버킨의 딸이 되고, 관계를 밝히지 못한 뒤에는 꿈속에서 비밀을 털어놓는다. 성준과 헤어진 뒤에는 자신을 한눈에 알아보고 미국으로 데려가겠다는 남자까지 나타난다.

꿈속에서도 해원은 소원을 얌전히 받아먹지 않는다. 원하는 사람과 다정해진 순간에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고, 자신을 구해주겠다는 남자에게도 자기를 잘 알지 못한다고 대답한다. 선택받고 싶은 마음과 그 선택을 믿지 못하는 마음이 한 침대에서 나란히 잠든다.

해원의 마음은 말보다 움직임으로 먼저 보인다. 엄마가 떠난 날 성준에게 전화하고, 성준이 학생들 앞에서 자신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자 화를 내며, 끝내겠다고 한 관계를 꿈에서 다시 시작한다. 남한산성에서 해원은 바람에 펄럭이는 깃발을 보며 말한다.

“그것 때문에 바람이 보이잖아요. 눈에.”

깃발은 바람을 보여주지만 바람의 사정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해원이 성준에게 전화했다는 사실은 보여도 그것이 사랑인지 외로움인지 습관인지는 알 수 없다. 마음을 이해했다는 생각은 가끔 깃발 하나를 보고 바람이 어디서 태어났는지까지 알아냈다고 믿는 일과 비슷하다.

#5 착한 아저씨

“꿈에 본 아저씨는 전에 본 착한 아저씨인 것 같았다.”

남한산성의 아저씨는 해원을 알아내려 들지 않는다. 미국 교수는 해원을 거의 모르면서 해원이 어떤 사람인지 길게 말하지만, 이 아저씨는 술을 권하고 엉뚱할 만큼 평범한 질문 하나를 건넨다. “남한산성 산책하는 것 좋았습니까?”

그 질문에는 해원이 되어야 할 사람이 없다. 아저씨는 해원을 예쁘거나 특별한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미국으로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도 않는다. 해원이 누구인지는 묻지 않고 오늘 걸은 길이 좋았는지만 묻는다. 사람을 이해하려 들지 않는 태도가 때로는 가장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친절에는 해원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 없다. 딸은 떠나는 엄마를 이해해야 하고, 연인은 성준의 사랑과 고통을 함께 견뎌야 하며, 학생은 교수와의 관계를 숨겨야 한다. 그러나 낯선 사람에게서 잠깐 받은 친절은 해원에게 어떤 사람이 되어달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해원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자신에 관한 정답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친절에 관한 기억이다. 자신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한 남자의 말은 긴 꿈속으로 사라지고, 자신을 설명하려 하지 않은 사람은 일기에 남는다. 특별한 사람이 되게 해주는 말보다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짧은 시간이 오래 남는다.

모든 마음을 이해해야만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앞뒤가 맞지 않는 마음을 고치거나 하나의 원인으로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 해원은 자기가 왜 그랬는지 끝내 알지 못했지만 누구를 착한 사람으로 기억할지는 골랐다. 그 정도면 다음 날의 일기를 시작하기에 부족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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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깃발과 바람

해원은 꽤 한심한 사람이다. 성준의 비겁함을 알면서 다시 부르고, 숨겨진 관계가 싫다면서 그 관계가 주는 특별함은 놓지 못한다. 자기를 다 안다는 사람의 말은 믿지 않으면서도 누군가에게 특별히 선택받고 싶어 한다.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공이라면 몇 장면이면 끝낼 일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반복한다.

그런데도 해원을 미워하기는 힘들다. 해원이 불쌍해서라기보다 사람은 가장 외로울 때 가장 한심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아서다. 엄마와 헤어진 날 해원이 성준에게 전화한다는 순서는 그 만남을 낭만적인 사랑보다 쓸쓸한 피난처럼 보이게 한다. 혼자가 된 사람에게는 좋은 자리보다 당장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먼저 보일 때가 있다.

이 영화는 해원의 모순을 변명이나 교훈으로 정리하지 않는다. 잘못된 관계를 끝내지 못했다고 벌하지도 않고, 마침내 자기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결론도 내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원의 행동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는다. 해원은 이기적이고 허영도 있으며 자기가 싫어하는 관계를 스스로 다시 시작한다.

나는 사람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그 마음까지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랑하면서 떠나고 싶을 수 있고, 떠나고 싶으면서 붙잡히고 싶을 수도 있다. 혼자 있고 싶으면서 누군가가 오늘 있었던 일을 물어봐 주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그 사람의 행동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다.

홍상수는 그런 모순을 비극처럼 울부짖게 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고,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괜히 질투하고, 끝낸 관계를 다시 시작하고, 그러다 산에 올라간다. 해원도 성준도 우습고 성가신데 어느 순간에는 정말 외로워 보인다. 그래서 웃고 있다가 갑자기 쓸쓸해진다.

해원이 쓸쓸해 보이는 것은 단지 혼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해원은 누구의 딸, 연인, 제자, 특별한 여자라는 이름을 계속 얻지만 그 어느 이름에서도 편안해지지 못한다. 사람들은 해원을 선택하지만 해원에게 자리를 내주지는 않는다. 해원은 사랑받고 싶은 사람이라기보다 잠시라도 안심하고 싶은 사람처럼 보인다.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해도 해원의 하루는 끝난다. 성준을 완전히 떠나지도 못하고 자기가 누구인지 알아내지도 못했지만, 잠에서 깨어 일기를 쓰고 엉망인 하루에서 한 사람의 친절을 골라낸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만 다음 날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내게는 위로가 된다.

나는 그래서 술에 만땅 취한 날 이 영화를 다시 튼다. 취하면 해원과 함께 같은 자리를 맴돈다. 바람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는 대신 깃발이 흔들리는 모습을 그냥 본다. 사람 사는 일이 원래 별일 없이도 이토록 복잡하다.